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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문화 기획2) 조선군 최후의 장군 어재연신미양요 때 미군과 맞서 싸운 어재연 장군
양원섭 기자  |  wonsub1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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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02  02:5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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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함께 한 일로 유명해진 경우를 종종 본다. 대표적으로 미국에는 라이트 형제가 있고 독일에는 그림 형제가 있고 프랑스에는 뤼미에르 형제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이천에는?  율면 산성리 돌안마을에서 태어난 어재연, 어재순 형제를 소개한다.

구한말 제국주의 열강들은 우리나라와 통상조약을 맺으려고 하나 대원군의 쇄국 정치로 뜻을 이루지 못한다. 특히 미국은 1866년, 제너럴셔먼호가 평양에서 침몰한 사건을 계기로 조선의 개항 문제에 관심을 갖고 1871년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다.

고종 8년 신미년에 미군이 강화도 광성진을 공격하니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미국 해군과 싸우다 전멸한 조선군의 지휘관이 어재연, 어재순 형제다. 요즘 미국이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자고 회담을  자꾸 하는데 역사는 늘 되풀이 되는 모양이다. 마음이 심란해져서 율면에 있는 어재연 장군 생가와 사당을 찾았다.

   
 

>> 기품 있는 장군목 느티나무 옆 어재연 장군 생가

어재연 장군은 이천시 율면 산성1리 돌안 마을에서 1823년 2월, 어용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아홉 살 되던 1841년 헌종 7년에 무과에 급제한 후 공충도 병마절도사를 지내다 신미양요 때 진무중군으로 임명되어 강화도 광성보를 수비하다 미군과 전투 중 전사했다.

그의 생가를 찾아가는 길은 멀다. 이천시 행정구역 중에 율면은 제일 남쪽에 위치하며 충청도 음성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경기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며 간다. 돌안마을 앞을 지나는 길은 안쪽은 경기도고 바깥쪽은 충청도라고 한다.

어재연 장군의 생가는 20여 가구 남아 있는 마을 가장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도로에서 보면 보이지 않으나 산을 끼고 마을에 들어서면 팔성산을 배산으로 편안하게 자리잡은 생가를 만날 수 있다. 새로 이엉을 올린 탓인지 초가 지붕이 밝게 빛난다. 1800년대 초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그 뒤 손질을 잘 한 모양이다.

서양 오랑캐의 침입에 목숨을 걸고 싸운 분이 태어난 곳이라고 생각하니 대문 안으로 불쑥 들어가기가 조심스럽다. 문에 들어서자 낮은 담이 마당을 가리고 뻗어 있다. 그러니 안채와 안마당과 살짝 가려지며 사랑채와 자연스럽게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 안채는 ㄱ자형 구조로 부엌, 안방, 대청마루, 건넌방이 있다.

대문 왼편에 위치한 一자형의 사랑채는 부엌, 대청, 사랑방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의 대청마루는 안마당 쪽은 막아놓고 바깥마당으로 터놓아서 마루에 앉아서 보면 마을이 다 내려다보이게 툭 터져 있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 사랑채, 광채가 모여 ㅁ형의 배치구조를 이루고 있다. 광채의 뒷모서리에서 뒤로 넉넉하게 토담을 둘러친 모습이 푸근하다. 뒷마당에 오래된 감나무와 살구나무가 있는데 감나무 줄기에 이끼가 촉촉하다.   

생가를 둘러보고 훌쩍 나오기가 뭐하다. 괜히 장군님이 안방에서 태어나셨을까 생각하며 방을 기웃거려본다.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장군님이 전사했을 때 늘 타고 다니던 말이 집에 돌아와 쓰러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떠올려 본다. 처연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 내려오는데 우람하고 기품 있는 느티나무가 홀연 눈에 들어온다. 생가를 찾아 올라갈 때는 왜 보지 못했을까. 아마 차를 타고 생가 앞까지 가다보니 못 본 모양이다.

높이가 30여 미터 되고 둘레가 사람 둘이 맞잡아야 될 것 같다.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자랐는데 가지들이 튼실한 게 건강해 보이고 멋있다. 안내판에는 수령이 170년이라고 쓰여 있지만, 느티나무는 더 오래전부터 마을을 지키고 있었지 싶다. 아직 겨울 끝이라 나뭇잎이 하나도 없는 잔가지지만 하늘을 온통 덮고 있는 품이 여름이 되면 무성한 잎으로 짙고 깊고 넓은 그늘을 만들어 주겠다. 느티나무가 어찌나 멋있고 기품이 있던지 저절로 손을 모아 합장하고 절을 한다. 함께 있는 두 분 장군님을 뵌 듯하다.

>> 미군 병사들마저 조선군의 용감함에 경의를 표하고

생가 맞은편 양달말에 어재연 장군 사당인 충장사가 있다. 후손들이 1973년에 사당 건립을 추진해서 1974년에 준공했다. 사당에는 1871년 신미양요 때 강화도 광성진에 침입한 미국 해군을 막기 위해 싸우다 전사한 어재연(魚在淵), 어재순(魚在淳) 두 분 위패를 모셨다.

부하 장수였던 이현학, 박치성, 유풍로, 김현경, 임지팽의 위패도 같이 모시고 있다. 나라에서는 어재연 장군에게 충신정문을 하사하고 충장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쌍충문을 지나 사당에 오르니 충장사(忠壯祠)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일 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내는데 이천향교에서 주관하고 인근 유림과 후손들이 모여 제를 올린다고 한다. 

매년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위패를 모신 분들이 서양 사람들과 싸우다 돌아가셨기 때문에 외래종은 절대 안 쓰고 돼지고기도 토종 흑돼지만 쓴다고 한다. 제삿날 홍살문 앞에 흑돼지를 데려와 제관에게 보인 다음에 돼지를 잡아 생고기를 올리는데 쌀, 나물, 과일도 모두 우리 것만 쓰고 날 것으로 올린다고 한다. 후손들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19세기. 세계 열강들 속에서 우리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건만 역부족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너무 몰랐다. 미군이 군함에서 함포 사격을 지원받으면 공격할 때, 우리는 터지지도 않는 구식대포로 맞서고 백병전에 돌멩이나 흙을 뿌리며 죽기를 각오하고 처절하게 싸웠다. 오죽하면 미군 병사들이 조선군의 용감함에 경의를 표하고, 국가를 위해 그토록 강력하게 싸우다가 죽은 국민은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을까.

신자유주의 경제가 대세인 요즘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은 당연한건지도 모르겠으나 대등한 관계에서의 협정이라면 몰라도 불평등한 조건으로 협정을 맺는다면 과거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아직도 우리는 세계화의 겉모습에 만족하고 힘센 나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 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대응법도 모르고 있는 걸까?

“그래, 우리가 애들 데리고 자주 충장사에 놀러 가는 거야. 어재연 형제 장군님과 부하장수님들께 떼를 쓰는 거야. 우리 민족 지켜주고 이천쌀 지켜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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